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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은 날 참 죄송스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유권자로서 정치가 김대중을 지지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화계 종사자로서는 지난 10년간 항상 김대중 대통령에게 고마운 마음을 품어 왔습니다. 고인을 조명하는 더 좋은 글들이 많이 올라오겠지만, 업계종사자로서 짤막하게나마 문화산업에 관한 고인의 치적을 밝히고 싶습니다.
▶ 문화예산 1% 달성
문화예산 확충은 국민의 정부 주요 공약 중 하나였습니다. 참여정부의 ‘복지예산’ 비중이 역대 정권 대비 가장 높았다면, 국민의 정부는 ‘문화예산’ 비중이 역대 정권 중 가장 높았습니다. 국민의 정부에서 문화산업 예산은 사상 처음으로 정부예산 대비 1%를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 문화산업진흥기본법 제정
1999년 2월 제정, 1999년 5월에 시행된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은 지난 10년간 한국의 문화산업이 발전하고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 법을 통해 문화분야에 대한 투자조합 설립의 근거가 마련되었고, 각 문화산업 분야의 전문 지원기관들이 생겨났습니다. 문화산업을 위한 산업단지를 만들고, 문화산업을 위한 각종 진흥기금을 설치하는 일 또한 이 법을 통해 가능해지거나 활성화되었습니다.
▶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부천만화정보센터, 서울애니메이션센터, 한국게임산업진흥원 … etc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KOCCA)과 한국게임산업진흥원은 ‘문화산업진흥기본법’에 따라 설립(1999~2001년)된 대표적인 문화산업진흥기관입니다. KOCCA는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대중음악 분야를 지원하고, 게임산업진흥원은 게임을 지원합니다. 부천만화정보센터는 1998년에 부천시의 지원(원혜영 시장 - 민주당)으로 설립되었고 만화를 주로 지원합니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서울시(고건 시장 - 민주당)가 애니메이션 지원을 위해 설립(1999년)하였습니다.
이 기관들이 지난 10년간 정부예산(=국민의 세금)을 받아다가 관련 산업에 지원한 액수만 하여도 가뿐히 1조 원을 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그 돈이 모두가 만족스러울 만큼 효과적으로 쓰이진 못했습니다. 그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는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삽질에 쓰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
▶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이 공약사항에 따라 어떤 분야를 적극적으로 육성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 가장 신뢰하는 측근을 해당 부처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박지원을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기용(1999년 ~ 2000년) 했습니다. 박지원 장관은 문화부 예산을 1% 이상 끌어올리고, 문화산업진흥기본법에 따라 설립된 관련 기관에 예산을 퍼부어 주었습니다. 일례로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처음 설립될 때 정부에서 찔러준 종자돈이 대략 3천억(그리고 이후로 매년 5~600억 씩 계속). 어차피 밥그릇 챙기기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은 사실입니다. 솔직하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 한류라고 하는 것…….
‘쉬리’는 1999년에 개봉하여 - 아마도 70년대 이후 최초로 - 한국영화로서 연간 흥행 1위를 기록하였습니다. 방화는 한국영화가 되었고, 한국영화는 한국영화산업이 되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10여 년 이상 매년 흥행 1위는 어김없이 한국영화가 차지했습니다. 한국은 자국영화 점유율을 미국영화와 대등하게 유지하는 극소수 국가 중 하나입니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저는 한국의 문화상품이 - 그것이 영화든 만화든 게임이든 캐릭터든 - 한반도 밖에서 경쟁력을 가지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헐리우드 영화가 국내시장의 3/4을 차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애니메이션이 앙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두 번이나 대상을 탈 줄도 몰랐지요. 하물며 한국만화가 연간 200종이나 유럽에 수출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어쨌거나 김대중 정부 시기를 지나면서 문화산업의 각 분야는 크게 발전했습니다. 더 발전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을 느끼거나 말거나 사실은 사실입니다. 온라인 게임으로 돈 좀 벌기도 했고, 만화산업규모는 세계 3위 권을 유지하고 있고, 한국드라마가 전 아시아 지역에서 불법으로 공유(...)되고 있기도 합니다.
▶ 기타 …
일본대중문화를 개방했습니다. 당시에는 일본의 영화, 애니메이션, 음악, 게임 등이 한국시장을 쓸어버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고 보니 오히려 한국이 문화상품을 수출하는 쪽입니다.
독립적인 문화재관리기관인 문화재청이 설립(1999년)되었습니다. 문화산업진흥 5개년 계획(1999년)이 수립되었고, 만화산업진흥 5개년 계획도 수립(2002년)되었습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확대 설립(2001년)되었습니다. 문화산업진흥기금, 영화진흥금고, 출판금고, 방송발전기금 등도 빵빵하게 채워놓았습니다. 온라인게임은 뭐 좀 … 지나치게 발전해버렸습니다.
…
되돌아보면, 지난 수십 년을 통틀어 보더라도 문화산업분야(산업 말입니다. 산업)의 중요한 변화는 거의 2000년을 전후한 몇 년에 걸쳐서 이뤄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문화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 이전에 문화는 예술일 뿐 산업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예술이면서 산업입니다.
다시 확인하지만, 이러한 성과 뒤의 그림자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산업이 아닌 예술을 원하는 이들은 ‘문화산업’에 거부감을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부예산집행이 다 그렇듯 절차적인 비효율도 분명히 있었고, 불가피한 거품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과를 덮을 정도로 기다란 그림자는 결코 아니었죠.
평범한 문화향유자로서, 관련 분야 종사자로서, 이만큼이라도 굶지 않고 이 바닥에 들러붙어 뭔가 할 수 있도록 도움을(=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인에게 원초적인 고마움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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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콘텐츠진흥원과 게임산업진흥원은 2009년 들어 방송영상산업진흥원과 함께 한국콘텐츠진흥원으로 통합되었습니다. http://www.kocca.kr
* 본시 ‘구 민주계’를 지지했고, 그 이후로는 꼬마민주당에서 노무현 - 열린우리당 계보로 지지 정파를 옮겨온 탓에,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에서 고인이나 고인의 소속정당에 표를 던져본 적이 없습니다. 절묘하게 비켜가더군요. 1997년 대선에서 투표를 못 한 것이 아쉬울 뿐. (적고 보니 변명 …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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